무엇이든 첫 번째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이라는 어떤 상징성이 더해진달까요. 그래서 첫 번째로 어떤 한국영화를 추천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머리에 바로 떠오른 영화를 추천하기로 했어요.
봉준호 감독님의 장편영화 데뷔작은 색인출판이 두 번째로 색인했던 <플란다스의 개>지만 많은 분들이 <살인의 추억>을 봉준호 감독님의 데뷔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임팩트가 컸고 많은 사랑을 받았죠.
저는 <살인의 추억>을 보면 이 꽉 물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간절함과 밀도가 느껴진달까요. 실제로 index <플란다스의 개>를 만들기 위해 봉준호 감독님을 인터뷰했을 때 첫 장편영화가 상업적으로 실패한 것에 대한 씁쓸함과 다음 영화를 빠르게 만들어서 잘 해보고자 했던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마음이 에너지파 쏘듯 뭉쳐져서 만들어진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결과는 520만 관객이라는 성공적인 숫자였고 봉준호 감독님은 그 이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구수한 냄새가 화면 밖까지 풍기는 K스릴러의 풍미가 가장 완벽하게 담긴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관객에 불과한 제가 'K스릴러의 정의가 뭐냐?'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을 리는 없고 그런 걸 정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요. 엉성하게 풀이 돋은 비포장길부터 논밭, 산, 허름한 경찰서 같은 배경부터 시작해서 인물들의 옷차림, 걸음걸이, 말투와 선택까지 뭐 하나 세련되 보이려는 노력이 없지만 <살인의 추억>이 뿌리는 화면은 지금 봐도 어색하거나 촌스럽지가 않습니다. 날 것 그 자체라기엔 다소 오묘한, 30초 정도 데쳐서 영양분은 그대로인데 재료의 맛은 기가막히게 살아있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부분이 제가 <살인의 추억>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식상하지만 배우들입니다. 송강호의 이미지는 이제 꽤나 닳아버려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송강호의 연기를 어느 정도 예상하는 수준까지 왔지만 2003년에는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의 송강호는 엄청나게 투박하지만 날이 바짝 서있는 도끼 같다고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클라이막스에서 송강호가 내뱉은 애드립,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나 마지막에 범인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얘기합니다. 물론 두 장면 다 명장면이죠. 근데 그 장면들이 명장면이 되려면 설득력이 있어야 해요. 송강호는 127분동안 관객을 온전히 설득해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왔을 때 관객들은 송강호의 눈동자만 보고도 설득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송강호가 설득력을 가지는 건 그 반대편에 서있는 박해일이 선과 악을 동시에 보이며 서있기 때문입니다. 환하게 웃으면 천사가 될 것 같은데 정색하고 입꼬리를 올리면 악마가 될 것 같은 천의 얼굴이 관객을 뒤흔듭니다. 그 외 조연들의 열연도 물론 화려하고요.
그러니까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라는 역대급 포텐셜의 감독이 이번이 아니면 다음이 없다는 생각으로(물론 제 추측입니다만) 이 꽉 물고 만들었는데 배우들까지 잘해버려서 태어난 명작 스릴러입니다. 이미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을 색인했기에 빠른 시일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색인출판에서도 색인해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