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보자마자 색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입니다. index가 만들어진 이유가 되었던 영화, <우리들>만큼이나 index의 취지에 잘 맞는 영화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하필이면 index가 태어난 2019년에 영화가 개봉했고 <우리들>과 비슷한 요소들이 있어 색인 리스트 상단에 오르진 못했죠. 그래도 색인출판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꼭 색인하게 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벌새>는 칭찬할 만한 구석이 정말 많은 영화입니다. 그 에서도 제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미술팀의 작업인데요. 총 제작비 3억이라는 말도 안 되게 적은 금액으로 만들어진 <벌새>는 무려 1994년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임에도 완벽한 수준의 화면을 보여줍니다. 139분으로 러닝타임조차 짧지 않음에도 빈틈이 없습니다. 주인공의 집 인테리어부터 소품, 의상, 야외 촬영분도 놀라울 정도로 시대상을 유려하게 담아냅니다. 물론 배우 캐스팅 비용부터 급이 다르기에 절대비교는 어렵겠지만 최근 개봉했던 <범죄도시4>의 제작비가 153억 원인걸 감안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을 살아내는 한 명의 학생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는 서사는 다면적이면서도 깊습니다. 등장인물이 꽤 많아서 따라가려면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음미하고 나면 누구 하나 허투루 쓰이거나 의미 없이 출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1년은 많은 관계와 이야기로 가득한 것이 어쩌면 당연할 테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장점 외에도 연출이나 연기 등 <벌새>가 좋은 이유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데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적은 제작비와 유명배우가 부재한 다양성 영화 중에서도 관람할 가치가 충분한, 빛나는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벌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관람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갈수록 영화관은 큰 화면과 빵빵한 사운드가 제 몫을 하는 영화를 볼 때만 제값을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은 자연스럽게 소위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액션 장르의 영화들이 주를 이룹니다. 저 또한 그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것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벌새>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만나게 되면 기쁘게도 영화관이 블록버스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15,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깊이 침전하는 영화를 볼 때도 전혀 아깝지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쉽게도 지금 영화관에서 <벌새>를 볼 순 없지만 집에서 보더라도 그 감동을 비슷하게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벌새>를 색인하고 다 함께 영화관에서 <벌새>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