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장르라는 건 사실 딱 정해진 기준이 없습니다. 요컨대 '이런'장면이 나오면 액션이고, '저런'장면이 나오면 공포다. 이런 기준이 없죠. 그래서 영화를 소개하는 사이트 장르란에는 으레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이런 식으로 한 영화에 담겨있는 장르적 요소들을 열거하곤 합니다.
얼마 전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깜짝(?)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였습니다. 소위 '오컬트'라고 불리는 장르인데요. 저는 <파묘>를 보면서 오히려 <곡성>이 얼마나 훌륭한 오컬트 장르영화였는지가 떠올랐습니다.
오컬트 장르영화는 종교나 일상생활에서의 초현실적인 사건, 소문 등에 기반한 서사를 가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오컬트 장르영화가 전무했죠. 개인적으로 장재현 감독이 2015년 <검은 사제들>로 오컬트 장르로서는 사실상 첫 번째 상업영화를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6년 뒤이어 나온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687만 관객을 영화관으로 모아들이며 한국형 오컬트가 충분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앞에서 이 장르는 이렇다는 기준이 없다고 장판을 깔았으니 제가 생각하는 오컬트 영화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곡성>에 그 요소들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 한 번 떠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오컬트는 첫 번째로 관객을 놀래키기 보단 눌러야 합니다. 저는 <곡성>을 설명할 때 사람을 지그시 누르는 영화라고 표현합니다. 공포영화에 소위 점프존(관객을 깜짝 놀래켜서 점프하도록 만든다는 의미의 구간)이 존재하는 것이 국룰이라면 오컬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 채 기가 눌리는 느낌이 나는 것이 매력입니다. 그리고 곡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르는 힘이 빠지지 않고, 그렇다고 확 눌러버리지도 않고 참 잘 누르는 영화입니다.
두 번째로 제가 생각하는 오컬트의 특징은 공포의 실체가 흐리다는 점입니다. 공포영화는 보통 어느 구간에서 공포의 실체가 드러날지가 기승전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혹은 처음부터 공포의 실체를 관객들에게 공개하고 극 전체를 이끌기도 합니다, 어쨌든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는 잘 없죠. 반면 오컬트는 관객이 공포를 느끼는 실체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특정하기 어려울 때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곡성>은 정확히 이 부분에서 오컬트 장르의 매력을 극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하고 심지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찝찝함을 남기니까요. 기분은 별로지만 장르영화로서는 훌륭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곡성>은 잘 만든 장르영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 오는 날 <곡성>을 심야로 관람하고 혼자 자취방에 와서 잠들기 전까지 가위에 눌릴까 봐 걱정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