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1등은 기억하지만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명량>이 대한민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라고 하면 대부분은 별로 놀라지 않을 텐데요. <극한직업>이 역대 박스오피스 2위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이 사실 자체에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코미디 장르영화는 정말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영화니까 재미가 있어야 할 것이고요, 코미디니까 웃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웃음이라는 건 엄청나게 까다롭습니다. 개인적인 웃음 포인트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너무 과해도 안되고 너무 약해도 안되며, 심지어 국민적 정서나 문화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덕분에 헐리웃에서는 대박을 낸 코미디 영화가 충무로에서는 힘을 못쓰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죠.
그래서 더더욱 <극한직업>이 일궈낸 성과는 놀랍습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해 보자면 <극한직업>이 받아든 1,600만이란 성적표는 전 국민이 공감하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이 영화의 이야기가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는 증거이니까요.
<극한직업>이 왜 이렇게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면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순도 높은 웃음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예전이라면 통했을 유치한 피지컬 코미디, 어쭙잖은 말장난은 오히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극한직업>은 관객이 자연스럽게 상황에 이입할 수 있게 배경을 만들고 각각의 캐릭터가 내리는 결정과 행동에서 웃음을 우려냈습니다. 분명히 서사는 픽션인데 관객들이 느끼기에 억지가 없다는 점. 이것이 <극한직업>이 만들어내는 웃음의 가장 강력한 지지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도 코미디 영화에서 캐릭터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가스는 충만한데 불꽃이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극한직업>의 캐릭터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불꽃의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가스는 사방에 깔려있고 캐릭터마다 불꽃을 뿜어내니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웃음이 터집니다. 심지어 각각의 캐릭터가 다른 색깔과 크기로 불꽃을 터트리니 계속해서 웃음의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단지 이 정도가 <극한직업>이 역대 박스오피스 2위라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달성할 만한 근거였냐고 자문해 보면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화룡점정은 한국적인 공감대 형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적 호불호가 없는 음식에 가까운 '치킨'을 주제로 내세웠다는 점, 그리고 OECD 30개 국가 중 무려 6위에 달아는 자영업자 비율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치킨집을 차리는 것을 서사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좀 더 가보자면 형사들이 치킨집을 운영하며 투잡을 뛰는데 본업보다 부업이 더 잘 되는 것조차 웃픈 한국의 자화상이라면 너무 과장일까요?
결론적으로 <극한직업>은 코미디 영화로서의 필수조건을 탄탄히 챙기고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까지 감칠맛 나게 발라내면서 1,600만 관객이 모두 맛있게 즐기는 양념치킨 같은 코미디 영화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양념치킨 먹으면서 <극한직업>을 보고 싶네요.(왕갈비통닭은 실제 수원 행궁동 통닭거리에 있는 메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