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를 볼 때 미술팀의 작업에 유독 큰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2시간 동안 관객을 영화 속 세상에 가둬야 하는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미술팀의 작업이 뛰어나면 관객이 영화 속 세상에 쉽게 몰입하게 되죠.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그 일을 참 쉽게, 누구보다 잘 해내는 감독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런 박찬욱 감독의 실력이 폭발하듯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모든 화면의 디테일이 날 선 칼처럼 날카롭게 심장을 파고듭니다. 소품 하나, 벽지 하나까지 완벽한 나머지 관객들은 이 영화 속 세상에서 빠져나갈 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적당히 잘하면 그 부분이 도드라지지만 너무 잘하면 오히려 그 부분이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은 미장센의 존재감이 도드라지거나 뽐내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냥 영화 그 자체에 숨 쉬듯 녹아있어서 눈치챌 수조차 없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잘 깔린 판위에서 뛰어노는 박해일과 탕웨이를 보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누가 더 잘했고 누가 뭘 잘했고를 따지는 건 이 영화에서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두 배우는 정확히 본인들이 딛어야 할 자리를 딛고 이 영화에서 서로가 함께함으로써 내야 하는 시너지를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의견을 덧붙이자면 저는 박해일이 조금 더 흥미로웠습니다. 탕웨이의 매력이 뿜어져 나올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에 비해 박해일의 선과 악이 흐린 얼굴이 이야기에 작용하는 방식은 훨씬 더 예측 불가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함'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이야기의 신선함입니다. 박찬욱은 멜로의 클리셰를 따르지도, 미스터리 스릴러의 클리셰를 따르지도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직조합니다. 으레 기대하는 흐름을 비틀고 꺾으며 변곡점을 만들어내죠. 두 번째는 연출의 신선함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실험적인 편집점과 연출기법들이 과감히 사용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요.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이 왜 거장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잘 하는 건 계속 잘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걸 시도하는. 그런데 또 그걸 성공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영화가 <헤어질 결심>이죠. |